붉은 립스틱 단상

모 브랜드에서 립스틱과 립글로스를 1+1 행사하길래 이 참에 대거 지르리라 결심하고 갖고 있는 립스틱과 립글로스 색을 확인해보았다. 이왕이면 내가 갖고 있지 않는 컬러를 구입해서 구색을 맞추면 양심과 적당히 타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확하게 ** 개의 립스틱과 그 배는 될 듯한 립글로스 색을 하나씩 바라보고 있다 보니 문득, 조금 한숨이 나왔다. 물론 나는 메두사가 아니니까 내 입술은 위 아래 한 쌍밖에 없는데 저 많은 입술 연지를 어느 세월에 다 쓰나- 라는 건 아니다. 굳이 끝까지 다 쓸 필요도 그럴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다.

지금보다 어릴 때, 그러니까 약 3-4년 전에 구입한 립스틱 색상이 죄다 뻘거죽죽한 것들이었다. 대학 신입생일 때 내 입술색도 저러했겠거니 싶다.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입술색도 퍽 붉어서 굳이 입술에 색을 입힐 필요가 없었는데 왜 어린 나는 굳이 강렬한 색을 입술에 발랐을까.



나는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은 직후에 말로만 듣던 pc 통신 하이텔 및 나우누리 서비스에 접속해보았다.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게시판을 탐독하고, 인터넷 게시판도 들어가보고, 토론 및 말싸움도 자주 하고.. 참 재밌게 놀았다. 새로운 세계였고, 모르던 것들도 많이 알았고, 알지 않아도 좋았을 것들도 많이 들었다.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아직까지도 지긋지긋하게 존재하는 대학교에 대한 편견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남성적인 분위기로 유명해서 그 학교 여학생은 여자도 아니네, 제 3의 성이네 하는 농담이 유행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왠지 억울하고 울컥해서 조금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야 들으면 피식 웃고 상대도 하지 않을, 말 취급도 안할 소리에 불과하다고 여길 터이지만 당시 나는 꽤 어려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런가- 생각해보기도 했던, '나름' 열린 정신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대학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간 내가 얼마나 외부의 개소리로부터 차단되어 지냈는지를 새삼 느끼면서, 여자의 몸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들이대는 잣대에 분노하고 싸우고 화를 내면서 나는 감히 개소리는 내 앞에서는 감히 꺼내지도 못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고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내 선배들은 상당히 얌전하고 공부만 했던 샌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랫동안 부대낄 사이니까 술에 떡이 되기 전에는 정제되지 않은 속내를 꺼내지 않을 만큼의 양식은 있었다. 그러나 pc 통신이나 인터넷 상에서 본 이들은, 그리고 이리저리 오가다 만난 사람들은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를 가지게 할 만큼 비성숙하고, 몰상식하며, 짐승을 사람으로 사회화하는 의무교육과정은 대체 왜 저들에 대해 그 의무를 방기한 것인가 한탄케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전체 인구 중 절대 과반수 이상이라는 것을 매 순간 확인하면서 인간에 대한 실망을 넘어선 절망과 사회 시간에 추상적으로 듣고 넘어간 인간의 상품화를 새삼 체감했다.

내  20대 초반은 사람에 대한 지긋지긋함과 혐오 그리고 짜증으로 가득했다. 빌어먹을 잡것들아, 여자는 물건이 아니라고.

이제와 생각해보지만, 참 밝을 수 있었던 시기에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찬 시선을 가졌던 어린 내가 안쓰럽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일부를 보며 실망스러운 절대 다수를 예외라고 외면해야 했는지, 그럼으로 굳이 사람에 대한 불신을 제거했어야 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 어렵다. 내가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와 믿음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니 기대치를 화끈하게 낮추어서 전반적으로 재평가했어야 했냐고 묻는다면 역시 대답하기 어렵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꽃밭에서 뛰어노는 밝은 아이가 되기엔 나는 이미 알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개소리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살기등등한 낯으로 거리를 걸어다녔을 그 때의 내가 안쓰럽다.



이제 신체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는 남자들에게도 공공연하게 겨누어진다. 더 이상 평가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하는 느낌은 추락의 높이만큼 강렬하겠지. 본디 갖지 못한 것보다 가진 후 잃은 박탈감이 더욱 크듯이. 루저 발언과 그에 대해 시청률을 훨씬 웃도는 폭발적인 반응은 그런 잣대를 처음 받아본 이들의 당혹감과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그러했듯이.

사실 무서운 것은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간 큰 배짱이 아니라 크게 공론화된 후 음지에서 양지로 슬금슬금 올라오는 간 작은 이들이다. 사람의 인식은 참으로 무섭다. 생각이 포자를 뿌리면 멀리 멀리 날아가서 자라난다. 어디까지 퍼졌는지 그 범위도 알 수 없으며 자라나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자라나는 도중에 묻혀있던 무엇을 건드려서 깨울 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여성의 몸에 드리워진 잣대는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여성 중 이른바 44 사이즈가 꽤 많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제 슬슬 남자들도 하나 둘씩 느끼는 잣대가 몇 년 후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까.

두드리면서 나 역시 입맛이 쓰다. 바람직하다고 배웠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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