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ilib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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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합창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선 1학년에게 음악을, 2학년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음악 시간에 배우고 시험을 보아야 했던 곡 중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이 있었다. 물론 합창곡이니 한 사람이 부를 수는 없었고 7명이 파트를 정해서 한 번에 시험을 보았다. 한 성부만 듣지 않아도 되니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채점하는 사람도 좀 더 즐거웠다.


할렐루야 합창 시험은 2학기, 그것도 막바지에 있었다. 교정 가득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고, 한낮에도 해가 낮고 바람이 차가워질 때쯤이면 고색창연한 학교 건물 내 어둑한 복도에선 단정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내내 할렐루야를 불러댄다. 시험 보는 주와 그 전 주에는 하루 종일 학교에 할렐루야가 울려 퍼졌다.


오라토리오 형식은 같아도 바흐와 헨델의 접근 방식은 무척 달랐다. 당시 내게 헨델의 곡 짜임은 참으로 낯 뜨겁게 화려 가득해서 이것이 진정 종교곡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벤트 좋아하는 건 헨델 뿐 아니라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왜 1학년이 비교적 노력이 덜 들어가는 음악을 배우고 2학년들이 제작하고 그리느라 시간이 많이 드는 미술을 하는 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의도한 바였다.


쌀쌀한 가을이 겨울로 넘어갈 때쯤, 그러니까 실기 시험이 지나고 얼마 후에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있다. 학교는 미션 스쿨이어서 매 주 예배를 보았고, 수능 전의 예배에선 고3들을 위해서 1학년과 2학년이 할렐루야 합창을 불러 주었다.


시험 본 지 얼마 안된 나도 가사와 음정을 헷갈려서 어버버 했으니 1년 넘게 안 불렀던 2학년들은 유명한 소프라노 파트를 제외하곤 분명 음정을, 그리고 아마도 많은 이들은 중간 가사를 잊었을 것이다. 소프라노 메조 알토 파트 모두 불러보았는데 알토 음정이 생각보다 꽤 까다로웠으니까. 역시 중간 부분은 막 배운 1학년들 목소리만 들려서 웃으면서 불렀던 기억도 있다.


어쨌든, 1학년만 불러도 300명이다. 가사 간단한 앞 뒤 부분에선 두 학년 600명이 언니들의 시험을 응원하며, 언젠간 자신도 치룰 그 시험에 대한 각오를 다지면서 목소리를 끌어올려가며 노래를 부른다. 꽤나 극적으로 구성된 이 합창곡은 마지막 1분여간의 피날레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연습하던 학생들도 자신들의 노래에 도취되어 한껏 고양된 목소리와 상기된 얼굴로 부르던 부분이었다.


그 노래를 2년 간 불렀고, 이제 앉아서 듣는 입장이 된 고3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들었을까. 힘들게 힘들게 있는 힘껏 준비하던, 때로는 빨리 끝내고 싶고 때로는 시간이 더 주어지길 바랬던 시험을 앞둔 그들. 그 시험을 끝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석구석에서 웃고 떠들고 울고 싸우고 부대끼며 성장했던 공간인 학교를 떠나야 하는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오랜 만에 메시아를 듣다가 할렐루야 합창을 듣고 문득 내가 지낸 3년이 떠올랐다. 내가 수능 볼 땐 예배 때 할렐루야를 듣지 못했는데, 왠지 이제서야 내 선배들이 느꼈을 감정들이 마치 기억처럼 떠오른다.


by Figue | 2008/10/16 03:17 | 단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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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asakbasak at 2008/10/22 09:08
학교에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발에 채인다던 당신 학교 옆 외고 친구 말이 생각나네요.
Commented by Figue at 2008/10/22 10:00
어라, 내가 다닌 학교 근처에 외고가 또 있어요? 과학고 하나 있는 건 봤지만..
Commented by basakbasak at 2008/10/24 13:35
아 내가 착각했네요

당신이 다닌 그 외고 맞아요
Commented by Figue at 2008/10/27 16:44
스타인웨이.. 스타인웨이.. 왜 난 그거 본 기억이 없을까.. 봤으면 방가방가- 외치면서 몇 곡 두들겼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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